

* 서울시건축사신문 2025년 7월호 <장묘건축 탐방 제2편 > 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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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구비오 마을 증축 묘지
구비오(Gubbio)는 이탈리아 움브리아(Umbria) 주에 위치한 인구 3만명 규모의 작은 도시로 마을의 역사는 청동기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중세시대 초기 십자군 전쟁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며 번창했던 곳이다. 이 마을의 동쪽 어귀에는 네크로폴리스가 있다. 죽은 자를 뜻하는 nekros와 도시를 뜻하는 polis가 합쳐진 것으로 보통 도시의 성벽 밖에 위치한 대규모 묘지를 가리킨다. 오랜 시간 쌓여온 도시의 역사를 반영하듯, 구비오 마을 묘지도 수차례 확장을 거듭하여 왔으며, 그때마다 당시의 시대적 맥락을 담아서 조금씩 다른 형태의 묘지들이 추가되었다. 2011년에는 건축가 안드레아 드라고니(Andrea Dragoni)의 설계로 1,800㎡ 규모의 묘지가 증축되었다.
드라고니가 설계한 증축 묘지는 보다 현대적인 도시 구조의 리듬이 느껴진다. 벽감식 묘로 이루어진 선형블록들이 질서 있게 배치되어 있고, 묘역을 남북으로 관통하는 길들과 동서로 연결하는 통로가 만나는 지점에는 네 개의 광장을 두어 도시적인 느낌을 한층 강화하였다. 네 개의 광장은 방문객들이 쉬고 사색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보이드(void)인 동시에, 콘서트나 전시회 등의 문화 이벤트가 열리기도 하는 마을의 작은 광장과도 같은 공공 영역이다. 바닥과 벽, 그리고 벽감식 묘 등, 이 공간을 구성하고 있는 거의 모든 요소는 트래버틴으로 균질하게 마감되었다. 불필요한 장식은 철저히 배제되고, 시각적 자극은 극도로 절제되어 있다. 인접한 기존 묘지에서 보이는 직설법을 배제하고, 은유를 통해 죽음을 개념화하고자 하려는 건축가의 의도가 돋보인다. 죽음의 개별성보다는 익명성을 우위에 둔 것은, 개개인의 죽음에 대한 애도의 차원을 넘어서, 인간의 숙명으로서의 죽음과 마주하기 위한 것이었을까.
밀라노에서 건축가 드라고니를 직접 만났다. 그는 이탈리아인들이 지닌 죽음의 개념과 그것이 장묘 건축에 미친 영향에 대해 들려주었다. 기독교의 지배적 영향력 안에서 형성되어 온 이탈리아의 장묘 문화는, 죽음을 단지 삶의 ‘끝’이 아닌 천국에 이르기 위한 ‘과정’으로 인식하도록 영향을 미쳤다. 죽음이 삶과 단절된 것이 아닌 연속적 과정이라는 인식은 죽음과 관련된 공간의 조성에도 당연히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건축가는 중세도시 구비오의 구조를 면밀히 탐구한 이후에 이를 새로운 묘지로 옮겨 오고자 하였다. 재료와 형태적인 측면에서 뿐만 아니라 의미적 차원에서도 이곳에 공공적 성격을 담고자 한 것이다. 산 자의 도시와 구축적인 틀을 일치시키는 데서 출발하는 것. 이것이 죽음과 삶의 거리에 대한 건축가의 대응이었다. 그가 창조한 ‘죽은 자를 위한 새로운 풍경’은 ‘산 자의 세계’에서 가져온 익숙한 형태와 재료들을 추상적인 방식으로 재구성하여, 두 세계 간의 거리를 극적으로 좁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