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이 짙게 드리운 형이상학적 풍경
이탈리아 산 카탈도 공동묘지
의도하지 않은 사건에 휘말려 죽음에 가까이 다가가는 경험은, 한 인간의 삶의 방식을 바꾸고 사고체계를 뒤흔든다. 건축가 알도 로시(Aldo Rossi)에게도 그런 경험이 있었다. 막 40대에 접어든 그는 자그레브에서 이스탄불로 향하던 길에 큰 교통사고를 당한다. 골절로 인한 고통속에서 자신의 으스러진 뼈를 느끼며 침상에 누워 지내던 시간동안 그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그 사고로 인해 그는 죽음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고 그의 내면의 무언가가 영구히 달라졌을 것이다. 분명한 것은, 그 사고가 없었더라면 오늘날의 산 카탈도(San Cataldo) 묘지도 없었다.
모데나(Modena) 시내에서 차로 10분 정도 거리에 산 카탈도 묘지가 있다. 19세기 코스타(Costa)에 의해 설계된 구(舊) 묘지의 바로 옆에, 동일한 크기로 나란히 놓여있는 신(新) 묘지는 밖에서 언뜻 보면 거대한 담장으로 둘러싸인 수용소와 같은 모습이다. 내부로 들어서면 데 키리코(De Chirico)의 형이상학적 풍경화와 같은 장면이 펼쳐진다. 황량하리만큼 비어있는 거대한 중정이 나타나고, 그 공간을 에워싼 푸른 지붕의 건축물은 시선이 닿는 끝까지 이어진다.
시작도, 중간도, 끝도 알 수 없는 단순한 기하학적 형태가 계속되는 공간 속에서, 방문객은 길을 잃는다. 오직 침묵만이 가득한 공간에서 현재의 시간을, 마치 멈춰버린 영원처럼 느낀다. 이 광활한 공간 속에 살아있는 존재는 자신 뿐이라는 느낌, 그 압도적인 부재감은 설명하기 힘든 불안감을 안겨준다. 도시가 산 자들이 일시적으로 머무는 임시 거주지 같은 것이라면, 묘지는 죽은 자들이 영구히 머물게 되는 도시와 같은 것이라고 로시는 생각했다. 그런 맥락에서 이 곳에서 느끼게 되는 무시간성(無時間性)은 오히려 당연한 결과이다. 이곳은 산 자의 시간 감각과 규율로부터, 죽은 자들을 지키기 위해 구분된 영역인 것이다.
중정의 한 가운데에 붉은색 납골당이 있다. 규칙적인 구멍이 뚤린 벽으로 감싸진 큐브 형태의 건물로, 지붕이 없는 채로 중앙은 비워져 있다. 내부 벽체에는 납골함을 안치할 수 있는 작은 니치(niche) 모듈이 수직으로 빼곡하게 적층되어 있다. 대부분의 납골단은 한 번도 사용된 적 없이 비워진 채 남아있어 폐허의 정서를 더욱 짙게 한다. 문도, 창문도 없이, 그저 숭숭 뚫린 구멍들로 뒤덮인 벽체와 장식 없이 거칠게 마감된 내부를 경험하며 방문객은 치장하지 않은 죽음의 민낯과 마주하게 된다.
현재의 묘지는, 50여 년 전 로시가 제출한 공모안과는 사뭇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 공모 당시부터 논쟁이 끊이지 않았던 프로젝트답게 아직도 절반 이상이 지어지지 않은 채로 남아있다. 비록 미완성이기는 하지만, 이 공간이 주는 울림은 결코 가볍지 않다. 폐허의 감각은 쓸쓸하되 슬픔과는 다르며, 마음 깊은 곳의 잔잔한 수면을 들여다보게 한다. 죽은 자들의 거대한 집, 산 카탈도 묘지는 산 자에게는 깊은 사유를 불러 일으키는 장치다.


* 서울시건축사신문 2025년 8월호 <장묘건축 탐방 제3편> 에 게재된 글입니다.
© 2025 CURIOUS PRAXIS. All rights reserved